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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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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두루 인터뷰

다양한 사람의 일상을 소개하는 인터뷰를 엮어 만든 온라인 에세이집입니다. 같은 길 걷는 이웃들의 소소한 일상, 즐거움, 고충을 소개합니다.

들어가며
이 세상의 길 위에 찍힌 발걸음 수를 헤아려본다.
뛰어가느라 움푹 패인 발자국은 얼마나 될지, 질질 끄는 걸음이 잔잔하게 일으킨 흙먼지는 또 얼마나 될지. 누구의 작은 발이 지나간 자리 위로 먼먼 시간이 흐른 위에 누구의 큰 발이 도장을 겹쳐 찍었을 지. 어지럽게 흩어진 수억 수만의 발자국의 속도와 크기, 깊이와 순서를 머릿속으로 셈해본다. 그 모든 자취들의 교차점이 되었을 지점들도.
자국 중 얼마가 운동화 밑창 모양이고 얼마가 뾰족한 구두 굽일지를 생각한다. 얼마가 샌들, 맨발일지, 폭 좁은 타이어 모양일지, 동그랗게 푹 들어간 목발의 모양일지, 또 어떤 누구는 물구나무를 하며 걸어서 손바닥을 찍었을 지 생각해본다.
각 발걸음의 목적지는 어디였을 지 궁금해하는 정신은 말릴 길이 없다. 누구에게 이 지점이 스쳐 지나가는 곳이었을 것이고 다른 누구에게 종착역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길 위를 정신없이 돌아다닌다. 새삼 길은 아주 많은 출발과 멈춤과 머무름과 떠남을 겪었을 곳임을 깨닫는다.
몇 만년 전 대륙을 건너는 일부터 등교를 하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이동하는 인간의 발 아래에는 길이 있었음을 떠올린다.
복잡하게 얽힌 사람의 자취가 모두 길 위에 놓여있다.
생존의 총체, 역사의 총체, 일상의 총체가 모두 얽혀 있다.
이 인터뷰는 만인의 이동에 대한 아주 일상적인 자취다.

질문 하나 :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세 분의 인터뷰이, 한순옥님, 유진우님, 김두루(가명)님의 이야기입니다.
순옥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원주시에 살고 있는 70대 한순옥입니다. 남편과 둘째 딸 식구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진우 안녕하세요. 저는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는 유진우입니다. 장애해방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두루 안녕하세요. 저는 세 살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고 있는 김두루(가명)입니다.

질문 둘 : 당신의 발자국이 가장 많이 찍힌 길은?

‘장소’에 초점을 맞추어, 여러분의 일상에 대해 알려주세요.
순옥 장을 보기 위해 며칠에 한 번씩 시내에 있는 마트에 들릅니다. 운동 삼아서 집 주변 공터를 산책하기도 하고요.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 집에 방문하기도 합니다.
진우 보통 직장에서 일 끝나면 헬스장 갔다가 집 갑니다. 약속이 있을 시 운동을 가지 않고 약속을 갑니다.
두루 다니는 직장에 어린이집이 있어 주중에 아이와 함께 차로 출퇴근합니다. 오는 길에 대형 마트에 들르거나, 아이가 책을 보는 걸 좋아해서 서점에 자주 갑니다. 사소하게 불편한 점이 있다면, 서점이 2층으로 되어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거죠.

질문 셋 : 당신의 발자취를 더 멀리까지 옮겨주는 것은?

어떤 이동수단을 자주 이용하는지, 선호하는 이동수단이 있다면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순옥 저는 면허가 없어서, 장을 볼 때나 친구들 집에 놀러갈 때에는 남편이나 딸들이 차를 태워줍니다. 서울에 있는 친구와 만날 때에는 원주역까지 남편이나 딸이 태워다 주고, 거기서부터는 기차와 지하철을 타고 갑니다. 하지만 이용방법을 익히는 것도 어렵고, 지하철은 특히 돌아다니기 불편해 남편이나 딸들이 태워주는 것이 더 편하고 좋습니다. 남편과 딸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 서울 갈 때면 기차를 타겠다고 하기는 합니다.
진우 주로 버스, 지하철,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합니다. 선호하는 교통수단은 지하철입니다. 일단 버스는 저상버스가 없고, 출퇴근 시간에는 사람이 많아서 타지 못해 세 번 이상은 보내야 하고, 특별교통수단은 바로콜을 하면 보통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기에 출근 시간이나 약속 시간에 늦어 그나마 정시간에 갈 수 있는 지하철을 탑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는 이유는 버스나 특별교통수단은 기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반면 지하철은 눈치 안 보고 혼자서 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루 자가용을 많이 이용합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녀야 하니 버스나 택시는 당연히 이용할 수가 없습니다. 지하철도 유모차를 끌고 다니기 너무 어려워서 사실상 선택지가 자가용밖에 없습니다.

[키워드 질문들] 각 키워드에 대한 다양한 기억과 의견을 모아

첫 번째 키워드, 가족여행

가족여행의 추억, 좋았던 점과 힘들었던 점, 자유롭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순옥 예전에는 해외여행을 종종 갔었지만 이제는 몸이 힘들어 놀러 갈 때에도 국내 여행지를 돌아다니게 됩니다. 몇 달 전에 식구들과 통영에 놀러간 게 기억에 남습니다. 딸은 전망대에 가보자고 하는데 제가 무릎이 불편해 툭하면 관절이 아파서 좀 망설여졌습니다. 종종 오래된 건물이나 시설들에는 계단만 있어서 곤혹스러울 때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휠체어나 계단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경사로가 있어서 힘들지 않게 전망대까지 가고, 가족들과 경치 구경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계단만 있는 다른 시설들에도 이런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우 가족여행은 잘 안 가고, 보통 혼자 또는 짝꿍과 갑니다. 제주도 비행기를 탔을 때 비장애인 같은 경우는 혼자서 탈 수 있지만 장애인인 저는 대한항공 직원의 지원이 없이 혼자서 타지 못합니다. 기내용 휠체어가 따로 있어서 갈아타고, 비행기 안에서 지정석으로 옮겨 앉는 것까지 모든 과정이 지원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즐거운 추억은 제가 비건인데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비건 식당이 별로 없고, 특히 지역에 가면 갈수록 없는데 제주도에서는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비건식당이 3곳 정도를 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두루 아이와 여행을 간다는 게 만만찮은 일이라, 먼 곳으로 여행을 가기 보다는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가게 됩니다. 아이가 오래 걷기 힘든 나이라 유모차는 늘 챙겨 다녀야 해서, 유모차가 다니기 힘든 좁고 울퉁불퉁한 길, 경사로 없이 계단만 있는 곳들은 가기 힘듭니다. 큰맘 먹고 다른 도시로 2박 3일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휴게소 같은 시설은 그나마 경사로가 갖춰져 있어 유모차를 끌고 다니기 편했지만 여행지의 카페, 식당 중 유모차를 끌고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곳이 너무 한정적이라 갖은 고생을 한 기억이 대부분입니다.

두 번째 키워드, 취업과 직장생활

취업준비 중이거나 직장에 다니고 계시다면, 그 과정이나 기억에 남는 일들을 소개해주세요.
진우 저는 원래 목사가 꿈이었습니다. 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고, 대학원도 신학대학원으로 진학했습니다. 신학대학원에서는 교회에 채용이 되어서 실습을 해야 하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제가 학교에게 저를 채용할 수 있는 교회를 알아봐 달라고 했는데 알아보긴 하겠지만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저 스스로 20곳 넘는 교회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면접도 보지 않은 채 탈락시켰습니다. 학교에서는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놨지만, 장애원우에게 어떤 제도가 필요한 지에 대해서는 부재했습니다. 결국 목사라는 꿈을 포기하고 자퇴를 했고, 지금의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두루 저는 어렸을 때 뚜렷한 꿈이 없는 학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막연히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선생님’이나 ‘의사’처럼 직업으로 정리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대학교 때 열심히 고민한 끝에 지금은 보건의료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취업 자체에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지만 취업 후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며 일을 쉬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었고 휴직 후 다시 직장생활 할 준비를 하는 것도 예상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세 번째 키워드, 연애와 데이트

연애에 대한 가치관, 경험, 기억에 남는 일들을 자유롭게 나눠주세요.
순옥 남편과 50년 넘게 오손도손 살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처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데이트를 즐기지는 않지만, 같이 여행을 가거나 분위기 좋은 식당을 가는 건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아까 이야기했듯이, 남편과 저 둘 다 관절이 좋지 않아 계단만 있는 건물의 높은 층에 있는 식당에 가는 건 어렵습니다. 또 좌식으로 되어있는 식당에서는 허리가 아파 제대로 식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좌석이 좌식인 식당은 저희 같은 노인뿐 아니라, 휠체어를 사용하시는 분들도 불편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진우 저는 27년간 연애 경험이 없었습니다. 사회에서 장애인을 ‘무성적’ 존재로 낙인찍었기 때문입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선입견이 생겨서 도움이 필요하는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보고, 연애의 대상으로는 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운좋고 타이밍 좋게 연애의 기회가 생겼고, 지금 연애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연애의 가치관은 좀 더 친한 친구를 만나는 것,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에 남는 일화로는 서울에 거주 중이며, 비건이라서 갈 수 있는 식당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실은 가혹했습니다. 갈 수 있는 식당은 한정적이며, 가도 같은 식당을 가야 합니다. 그러던 중 망원에서 짝과 데이트를 하다가 비건 옵션이 되는 중식당을 가려고 했는데 식당에 턱이 하나 있어서 못 갔습니다. 결국 합정에 위치한 식당에 짝과 걸어가서 식사를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또한 영화관도 맨 앞자리에 휠체어석이 있어서 맨 뒤에 휠체어석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 데이트하는 근처에 장애인화장실은 있는지 확인하는 것, 지역으로 여행갈 때는 그 지역 특별교통수단을 등록하고 이용하는 것이 일화일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유 때문에 주로 집에서 요리를 하여 넷플릭스를 보며 데이트를 합니다. 배리어프리한 비건식당의 부재, 장애인화장실의 부재, 여행갈 때는 준비해야 할 것이 많기에 주로 집에서 데이트를 하는 것 같습니다.
두루 성향이 맞거나, 다르더라도 존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만나야 관계가 순탄하게 유지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배우자는 취향이나 성향이 매우 비슷한 편입니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놀러갈 때에도 관광지보다는 휴양지를 선호합니다. 연애할 때에도 영화관이나 도서관, 미술관에 자주 갔습니다. 한적한 카페에서 오랫동안 남편과 수다를 떨었던 날이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결혼 후,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연애 시절 했던 데이트를 많이 못하고 있지만 같이 바쁘게 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다른 행복한 추억들도 많이 쌓고 있습니다.

길 위의 발자국들, 자동차와 자전거, 배와 비행기 위에 남은 수많은 발자취들로 이어지는 우리의 삶. 팀 두루두루는 모든 이의 발자국을 응원합니다.